이 문서는 2022년 10월 12일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및 난민인권네트워크가 발표한 입장문을 바탕으로, 러시아 징집령을 피해 한국으로 피난한 사람들의 법적 지위와 한국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을 정리한 것입니다.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사람들이 왜 난민으로 보호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절차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배경
2022년 9월 30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른바 ‘부분적 징집령’을 발령했습니다. 이 징집령은 자의적으로 적용되어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발령 이후 수십만 명이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보도에서는 탈출자가 20만 명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한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요트를 타고 동해를 건너 동해·포항·고성 등지로 입국을 시도하는 러시아 국적자들이 나타났습니다. 2022년 10월 10일·11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명 이상이 해상에 도착했으나 입국이 불허된 채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국내외 여러 출입국 항만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난민인권네트워크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
1. 정보 투명 공개
언론에 보도된 잠재적 러시아 난민신청자들에 관한 정보와 정부의 대응 방침을 즉각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2. 난민신청 절차 접근 보장
한국 영해 안에 도착한 러시아 국적자에게 난민신청 절차를 안내하고, 실제로 비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난민법에 따라 신속하게 회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3. 국내 러시아 난민신청자 대책 마련
이미 한국에 체류 중인 러시아 국적자 가운데 징집을 거부하고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별도 대책이 필요합니다.
4. 중대한 사정변경 인정 및 구금 해제
징집령 발령은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합니다. 새로운 난민신청이 들어오면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공항 및 국내에서 난민법에 따른 심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구금된 난민신청자는 신속히 보호 해제해야 합니다.
5. 출입국 공무원 교육
전국 출입국 항만에서 근무하는 출입국·해경·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위법한 강제송환에 가담하지 않도록, 관련 규범·기준·절차에 대한 교육을 즉시 실시해야 합니다.
징집령 피난자는 왜 난민인가
병역 거부와 난민 지위
징집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은 1951년 난민협약이 정한 난민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탈출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징집 거부는 개인이 전쟁에 반대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징집 자체 또는 징집을 거부했을 때 받는 과도한 처벌, 둘 다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합니다.
병역 거부의 동기도 다양합니다.
- 양심 또는 종교: 전쟁 자체에 대한 양심적·종교적 반대
- 정치적 의견: 푸틴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
- 생존의 필요: 단순히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도피
설령 마지막 경우처럼 뚜렷한 정치적 신념이 없더라도, 당국이 그 사람을 ‘반역자’나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면 ‘전가된 정치적 의견(Imputed Political Opinion)‘에 의한 박해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징집 거부를 탈영으로 보아 최대 10년 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이는 박해의 근거가 됩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심사 지침 제10호 ‘병역과 난민 지위’를 통해, 병역 거부와 난민 지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전쟁 거부도 난민 사유가 된다
징집이 개인적 사유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난민 사유가 되는 또 다른 경로가 있습니다. 해당 전쟁이 국제사회로부터 전쟁범죄 또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전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될 때입니다.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관한 증거가 이미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 제4순회 항소법원은 1988년 M.A. A26851062 판결에서 “군사 행동이 인간 행동의 기본 규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는다면, 그 전쟁을 피해 탈출한 사람에 대한 처벌 자체가 박해로 간주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실제 적용 사례
‘전쟁난민은 난민이 아니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제기된 적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유럽에서의 시리아 난민 사례가 대표적 선례입니다. 시리아 전쟁을 피해 독일로 향한 남성들 중에는 아사드 정권의 징집을 피한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이 심사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 작센 주 고등행정법원 (2018. 2. 7., 5A 1245/17.A): 징집 가능한 남성이 반군 지역 출신이라면, 반군에 동조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전가된 정치적 의견’에 의한 난민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 헤센 주 고등행정법원 (2018. 6. 6., 3A 3040/16.A): 반군 지역 출신 여부와 무관하게, 병역 거부자는 아사드의 적으로 간주되는 것이 국가 상황이므로 모두 전가된 정치적 의견에 의한 난민이라고 판결했습니다.
- 헤센 주 고등행정법원 (2018. 6. 6., 3 A 403/18.A): 항소심에서도 같은 취지를 확인했습니다.
이후 독일 연방이민난민청(BAMF)은 시리아 병역 거부자들에게 ‘인도적 체류지위’가 아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실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제송환금지 원칙 위반 문제
한국의 영토나 영해에 도착한 잠재적 난민신청자에게 난민신청 안내와 절차 접근을 제공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입국 거부·입항 금지·계류 금지는 모두 난민협약이 금지하는 강제송환금지 원칙(Non-refoulement)의 위반입니다.
‘국경에서의 거부(Rejection at the Border)’ 역시 강제송환금지 원칙의 위반입니다. 공항에서 난민신청 절차 접근을 보장해온 다수의 국내 판례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국 법무부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해상 강제 북송을 강제송환금지 원칙 위반으로 해석해 온 바 있으며, 러시아 난민에 대한 동일한 처우 역시 같은 기준이 적용됩니다.
한국 정부에 촉구하는 조치
- 관련 대책을 즉시 수립하고 난민 신청 절차로의 접근을 명확히 보장할 것
- 난민협약 제31조(불법 입국에 대한 처벌 금지)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인계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지시를 신속히 발령할 것
- 한국에 이미 체류 중인 러시아 국적자가 징집 연령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할 경우, 체류·심사 관련 지침을 신속히 마련할 것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푸틴의 전쟁을 피해 피난한 러시아 사람들도 인권을 존중하는 성숙한 대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수치·기한과 관련된 최신 정보는 1345(외국인종합안내센터)나 관할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입장문을 발표한 단체
이 입장문은 2022년 10월 12일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와 난민인권네트워크 소속 32개 회원단체 및 4개 특별회원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했습니다.
참여 단체: TFC(The First Contact for Refugee),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사단법인 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센터 드림(DREAM),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글로벌호프, 난민인권센터, 동두천난민공동체, 동작FM,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사단법인 두루,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수원글로벌드림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 이주여성을위한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의정부 EXODUS,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참여연대,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재단법인 동천, 재단법인 화우 공익재단,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파주 EXODUS, 한국이주인권센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