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온 이사라 씨는 난민으로서 한국에 정착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독재 정권의 탄압을 피해 도착한 한국에서 언어와 제도의 장벽을 넘어야 했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성실히 이수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했고, 이제는 취미였던 제과제빵을 새로운 꿈으로 삼아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빵으로 한국과 이집트를 연결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이사라 씨는 두 문화를 조화시킨 빵과 디저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달콤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난민으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일궈 나가고 있는 그녀는 희망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MAP 난민뉴스가 2024년 11월 14일에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사라 씨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집트에서 온 이사라입니다. 제 원래 이름은 EITHAR인데, 비슷하지 않나요? (웃음) 지금은 이곳에서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제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집트를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

저희 아버지는 이집트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이집트 독재 정권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도소에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죠. 상황이 심각해지자, 저희는 이집트를 떠나야했어요. 그래서 수단으로 이주해서 3년정도 살았어요.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수단에서 대학을 다니며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집트랑 수단 정부가 협력하면서 또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됐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이집트 사람들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였거든요. 그때 남편과 저는 한국으로, 아버지는 인도네시아로 갔어요. 저희 아버지는 아직도 난민 인정을 못 받으셨어요. 제 생각엔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난민 인정까지의 어려움과 희망

저는 사실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항상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싶어해서 다른 문화를 빨리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한국이랑 이집트랑 비슷한 문화도 꽤 많았어요.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따로 자는 것, 어른들을 공경하고 식사예절을 지키는 것 등등이 비슷해요. 한국 너무 좋아해서, 나쁜 걸 잘 안 보려고 해요. 나쁜 것도 있지만 너무 적고, 좋은 것이 더 많아요.

그래도 난민 인정을 받기 전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보험이 없다는 거였어요. 병원 비용을 엄청 많이 냈어요. 임신했을 때, 진료 받고 70만원 낸 적도 있어요. 80만원밖에 없었는데, 70만원을 내고 10만원이 남은 거예요. 그때는 남편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라 더 힘들었죠. 너무 어려웠던 시간이에요. 저처럼 보험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엄청 많았어요.

출입국사무소에 가는 날도 너무 힘들었어요. 출입국에서 일하는 직원은 웃지 않고, 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마음이 아팠죠. 물론 난민비자(F2)를 받고나서는 다들 잘 대해주세요. 처음에는 ‘같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에 속상했어요. G1 비자라고 모두 나쁜 사람이 아니고, F2 비자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 사람이잖아요.

새로운 꿈

한국에 와서도 사실 공부를 다시 이어가고 싶었는데, 이집트 대사관에 가야만 받을 수 있는 서류들이 너무 많았어요. 근데 저는 난민이니까, 대사관에 가면 위험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부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착한 사마리아인 장학금’을 알게 됐어요. 지금 상황에서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 것보다, 자격증을 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사실 제과제빵은 원래 취미였어요.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요리해주는 걸 좋아했거든요. 일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착한 사마리아인 장학생으로 선정되면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죠.

지금은 필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험을 한국어로 봐야 하는데, 식품위생이나 미생물 같은 내용을 공부해야 해서 정말 어려워요. 2주 동안 7페이지 공부했어요 (웃음).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달콤한 빵으로 한국과 이집트를 연결하고 싶어요.”

깨를 듬뿍 묻힌 고리 모양 빵들이 창가 나무 쟁반에 놓여 있습니다.깨를 뿌린 길쭉한 빵들이 대나무 소쿠리에 담겨 있습니다.깨를 묻힌 가느다란 막대 빵들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옆에 나무 숟가락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달콤한 제과를 좋아하잖아요. 근데 이집트 제과도 많이 달콤하거든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 한국 과자랑 비슷하게 차나 커피랑 같이 마시면 좋은데, 이집트 커피는 설탕이 들어가요. 그래서 처음에 한국 사람들이 아메리카노 마시는 거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도 요즘은 아메리카노만 마셔요. 몇 년 더 지나면 완전 한국 사람 될 것 같아요. (웃음)

앞으로 꿈이 있다면, 가족 사업을 하면 좋겠어요. 제과점을 여는 거죠. 커피도 팔고, 디저트도 팔고. 이집트 문화랑 한국 문화 합치면 진짜 좋은 거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접시에 담긴 크루아상 여섯 개.식힘망 위의 치아바타. 하나는 잘라서 속의 큰 기공이 보입니다.호박씨를 듬뿍 올린 둥근 빵 한 덩이가 식힘망 위에 있습니다.

행복한 삶

드라마 보고, 맛있는 음식 먹는 게 제 행복이에요. 그리고 제가 만든 빵을 남편이랑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때도 너무 기뻐요. 최근에 남편이 생일이었는데, 생일 케이크를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생크림 아니고,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거예요.

이사라 씨가 남편 생일에 직접 만든 케이크. 윗면에 아랍어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사실 시간이 없어서 생일에 파티를 잘 못했어요. 근데 이번에는 시간이 돼서 남편한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남편 퇴근할 때 애들이랑 촛불 켜고 기다리다가, 문소리가 들리니까 애들이 아빠한테 달려갔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저는 아이들 키울 때 그냥 마음에 상처를 안 받고, 트라우마 없이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엄마랑 친하게 지내면서도, 엄마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노력해요. 말을 너무 안 들으면 애들을 방으로 데려가서, 왜 혼나는지 설명하고 엄마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줘요. 요즘 우리 애기들 실수 많이 하고 있어요. 근데 실수를 안 하면 아기가 아니니까 지금은 실수해야 해요. 그걸 이해하면서도, 그건 잘못이라고 말해주는 게 엄마가 할 일이죠.

그리고 한국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모르는 게 있거나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선생님과 논의해요. 많이 도와주세요.

이집트에서는 경제 문제 때문에 엄마도 아빠도 모두 일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아기랑 같이 있는 시간이 없어요. 요즘 이집트 학교 선생님들도 옛날 같지 않아요. 예전에는 예절 같은 거 많이 가르쳤는데, 요즘은 그냥 책에 있는 것만 가르치고 나쁜 행동 못하게 가르치지 않아요. 사회가 많이 바뀌었고 범죄도 많아졌어요. 경제문제때문에 엄마가 애들을 못 키우고, 아빠도 일을 두 개씩 하니까 상황이 더 나빠지죠. 근데 한국에서는 지원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엄마고, 아빠니까 경제문제 있으면 정부가 지원해줘요. 이런 지원이 없는 나라가 많아요.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이어진 한국 적응기

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한국 드라마 많이 봤어요. 어릴 때부터 한국어 계속 들으니까 익숙했죠. 일본어랑 중국어는 들으면 새롭고 다른 언어니까 이상한 느낌을 받거든요. 근데 한국어는 들으면 이상한 느낌이 없었어요. 이미 익숙한, 영어 같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한국 아주머니들이 한국어 연습하는 데 도움 많이 줬어요. 저한테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거든요. “히잡 왜 써요?” 이렇게 질문하면, “아 저는 무슬림이어서 이런 거 많이 입어요~”라고 대답해요.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면 할머니들이 남편한테 “와이프 힘드니까 많이 도와줘야 돼요~” 라고 말해주기도 해요. 너무 좋아요. 나쁜 한국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어요. 차별 당하지 않았고, 그냥 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만 만났어요. 너무 다행이에요. 그리고 나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한국 사람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나쁜 거죠.

처음에는 언어 소통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번역 앱 많이 사용했는데, 지금은 번역앱 안 써요. 사람들이 어려운 말을 하면 “그거 무슨 의미야?”라는 질문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더 쉽게 말해줘요. 아직은 모르는 단어도 많고 한국어를 전부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상황이 있어요. 그래도 계속 사용하는 단어들은 기억하려고 해요.

“고생 끝에 낙이 와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당연히 어려워요. 근데 포기하지 않으면 마지막엔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어요.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매일 공부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지금 시작하면 내일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어요. 2년, 3년이 걸려도 괜찮아요. 10년이 걸려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계속 해야 해요. 공부를 하다보면 어려워서 포기할까, 생각하는 사람들 너무 많은데, 포기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고생 끝에 낙이 온다”예요. 이 말을 배우고, 너무 좋아서 계속 기억하고 있어요. 카톡 프로필에도 써놨어요. 너무 좋아서 그래요. (웃음)

한국 문화 공부

저는 한국 문화도 정말 좋아해요. 단군 할아버지와 고조선부터 현대 대한민국까지 배우면서 한국 문화와 역사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았어요.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 1, 2단계에서는 선생님이 한국어로만 수업을 진행하셔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어요. 3, 4단계부터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됐고, 문제를 푸는 요령도 익혀서 점점 더 잘 해낼 수 있었어요.

5단계에서는 사회 이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단어도 어렵고 책도 두꺼워서 기본 내용이 많아서 수업시간 외에도 따로 공부해야 했어요. 저는 퀴즈 앱(Quizlet)을 활용해 모르는 한국어 단어에 아랍어 뜻을 등록하고 플래시카드를 만들어서 공부했어요. 이 방법은 지금 하고 있는 제과제빵 공부에도 활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어 단어 중 한자를 알면 이해가 더 쉬운 경우가 많아서 한자 공부의 중요성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는 간단한 한자만 알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같이 공부하면 될 것 같아요 (웃음).

마무리

저는 원래 포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에요. 어려움이 있으면 엄청 속상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냥 한국에서 잘 살고 싶어요. 좋은 국민이 되고 싶어요. 한국인이어도, 외국인이어도 모두 다 한국에서 같이 살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잘 살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살고 싶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면 오히려 문제가 정말 커져요. 포기하면 배우는 게 없잖아요. 그럼 그게 계속 문제가 돼요.

사실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 ‘왜 나를 인터뷰 하고 싶어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했고요. 솔직히 저는 제가 막 정말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사는 사람인 거죠. 그래도 제가 열심히 세상을 살고 있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얘기를 하면서 저도 감동을 좀 받았어요. 오늘부터 더 열심히 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