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은 2021년에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난민들을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카드뉴스로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그중 네 분의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 각자의 말은 그대로 옮겼습니다. 모두 2021년의 경험이라 지금의 제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Abdulqader, 대전시 주민

저는 한국에서 4년 정도 살았습니다. 예멘에 있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본지 2년이 되었습니다. 2021년 3월, 아내가 홍반성 낭창*에 걸렸고, 의사는 그녀가 치료를 받기 위해 이집트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G-1-6 비자(인도적 체류 지위)를 소지하고 있기에, 이집트에 있는 아내를 간병하려면 우선 재입국 허가를 신청해야 했습니다.
출입국사무소를 찾아가 아내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말하자 공무원은 “출국이 가능하긴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재입국 허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신청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왜 출국을 하려 하는지, 이집트에 가서 아예 정착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집트는 아랍권 국가이기에 제가 그곳에서 소통하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언어장벽 때문에 이집트에서 사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그에게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명을 듣기만 했습니다.
공무원은 이어 “아내분이 사망하시지 않는 한 재입국 허가를 내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저를 정말 분노케 해서 곧바로 출입국사무소를 나왔습니다. 출입국사무소를 떠나자마자, 공무원이 제게 전화해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그는 제게 일련의 서류를 보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재입국 허가를 내주기엔 서류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외국에 가고자하는 이유를 보다 상세히 작성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저는 필요한 사항들을 모두 준비해 한 주가 지난 후에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담당자분이 제게 가장 먼저 한 말은 “신청을 검토해 보겠지만, 결정과 관련하여 ‘왜 그런지’는 묻지 마십시오”였습니다. 그는 저의 서류들을 살폈고 신청이 거절되었다고만 말했습니다.
*홍반성 낭창: 작은 반점이 피부에 생기는 교원병
Saif, 안산시 주민

작년에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집과 가장 가까운 주민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다행히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 하실 수 있는 담당자분이 계셨습니다. 저희들 사이에 언어 장벽이 없었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담당자분께 가족들이 2019년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출국기한유예신청서를 통해 체류 기간을 연장해서 외국인 등록증이 없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저의 자녀 중 한 명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등록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분은 “당신께서 외국인 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지원금을 신청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재난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한국 정부로부터 굉장히 홀대받는 심정이었습니다. 담당자분께 “저희 아이가 등록증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아이가 등록증을 가지고 있어도 부모 중 누구도 등록증이 없다면, 지원금을 신청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셨는지 확인하고자 출입국관리사무소 근처에 위치한 다른 기관을 방문했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원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Askar, 서울시 주민

저는 최근에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온라인 앱을 이용하여 서울에 있는 유학생 친구와 함께 집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지낼 곳을 찾기까지 거의 한 달이나 걸렸습니다. 매일 20여 명의 집주인이나 부동산 중개업자와 연락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제 국적을 들은 뒤에는 “미안하지만, 외국인한테는 집을 임대할 수 없습니다.”라거나 “코로나 때문에 집을 임대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고시원을 포함해 방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체류자격을 확인받았습니다. 그런데 G-1 비자가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는 학생들한테만 방을 빌려준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곳은 앱의 광고와는 달리 1층이나 그 위층 방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신 지하에 있는 방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이는 건물의 모든 외국인은 지하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제가 위층의 방세를 낼 여유가 없을 것이라 단정 지었습니다. 친구의 작은 방에서 폐를 끼칠 수 없어 호텔과 모텔, 이곳저곳을 떠돌았습니다. 마치 홈리스(homeless)가 된 것 같았습니다.
Rosny(가명), 평택시 주민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 12월 당시 저는 방과 후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그리고 2018년부터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까지 근무했습니다. 저는 다문화주의를 가르쳤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일부 학교들은 외국인 교사들이 근무하지 못하게 했지만, 모두가 해고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들이 유럽 국적의 교사들을 채용했고 선호했기에, 많은 아프리카 국적의 교사들이 코로나 기간에 일을 그만뒀습니다. 몇몇 학교들은 차가 있으면 근무를 허가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기존에 주당 3회를 수업했는데, 주당 1회 혹은 2회로 일이 줄어들어 수입이 감소했고, 결국 2020년에 학교는 프로그램을 폐지했습니다. 제가 일을 잃기 직전에는 한 학교에서 일주일에 1~2시간씩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었습니다. 시간제 근무였기 때문에 실업 수당도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 게시: MAP 홈페이지, 2021년 11월 3일 (Abdulqader, Saif, Askar, Ros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