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씨는 부룬디에서 한국에 왔습니다. 아들 노아를 키우며 다른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있고, 경기도에서 부룬디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MAP 난민뉴스가 2024년에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합니다. 신시아 씨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싱글맘으로서의 삶: “저는 노아를 먼저 생각했어요!”
2019년에 노아를 낳은 뒤, 안산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하는 시간이 어린이집 시간과 맞지 않았어요. 부산에서도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건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천식과 폐렴 때문에 쇼크가 올 위험이 있었거든요. 결국 서울로 돌아와야 했고, 일자리와 어린이집을 둘 다 찾으려고 계속 애썼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먼저 구하고 나서 직장 근처에서 어린이집을 찾으라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노아였어요. 노아의 삶이 안정되어야만 제 삶도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일자리를 찾기 전에 노아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 데 집중했어요. 새로운 곳에서 노아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부룬디에서 온 아이들과도 친구가 되었어요.
만약 제가 일을 우선했다면, 노아는 제가 일하는 곳에 따라 여기저기 다른 곳에 적응해야 했을 거예요. 노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우리 둘 모두에게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기회를 좇을 수 있었어요.
자기 계발과 일
노아가 변화에 적응하고 안정되면서, 이제는 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원금을 받는 데 안주하고 나아지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일을 하고 싶었어요. 2023년 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MAP을 알게 되어 지원했어요. 이 경험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MAP에서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한국어 학교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했어요.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경제적인 문제나 노아를 돌보는 일 같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회통합프로그램(Korea Immigration and Integration Program) 5단계를 마쳤어요.
그러던 중에 MAP을 통해 한 행사에 참여했어요. 경기도 외국인 지원센터와 연결되었고, 경기도 공무원의 추천으로 새로운 일자리 제안을 받았어요. 그게 부룬디 대사 역할이었어요. 제가 난민을 돕고 필요한 정보를 전해 온 노력, 그리고 여러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추천을 받았어요. 고맙게도 영아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셔서, 지금은 경기도에서 대사로 일하고 있어요.
다른 난민을 돕는 일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어하는 난민들을 계속 돕고 싶어요. 저는 바깥의 도움 없이 혼자서 적응 과정을 이겨 내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어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제 대사 활동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어요. 부룬디라는 나라를 대표하면서, 우간다나 르완다 같은 이웃 나라에서 온 난민들도 돕고 싶어요.
공부도 계속하고 싶어요. 한국어 실력을 더 키우는 것뿐 아니라 대학교에도 입학할 계획이에요. 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난민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는 것이 제 목표예요.
신시아 씨의 메시지
“자신을 위해 싸우세요.”
“제가 제 안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면, 그건 저를 부정적인 삶으로 이끌 거예요. 저는 긍정적인 쪽을 선택해요.”
“한곳에 머물러 있기보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배우는 태도를 유지하세요.”